대한민국의 해군전략

  • 강영오(13)
  • 2020-08-01 07: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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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民國海軍戰略

 

                                               강 영 오(13)


시작하며


머지않아 통일한국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서 대한민국해군의 해군전략, 해군임무 및 해군력 유형 등 해군전략과 관련하여 검토한다는 것은 대단히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나름대로 독특한 해양사상, 해군전략 및 해군작전술이 발전되어 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9세기 통일신라시대에 海洋統制海洋貿易에 중점을 둔 張保皐 제독의 海洋思想, 14세기 말엽 고려시대에 해양통제와 해양강습(상륙작전)에 중점을 둔 鄭地 제독의 해군전략(海軍戰略)과 함께 16세기 말 現存艦隊艦隊決戰(Decisive Fleet Battle)을 병용한 李舜臣 제독의 해군전략과 海軍作戰術이었다.

이렇게 훌륭한 한민족의 海洋傳統은 불행하게도 단절되었으며, 망국과 함께 日帝 36년의 치욕을 겪고 대한민국이 탄생되었다. 대한민국 해군은 남북한이 분단된 상태로 거의 해군력 의 상태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비록 초기 해군구성원의 의욕은 강했지만 너무나 초라한 모습이었다. 이러한 암담한 상황에서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1950년에 6.25한국전쟁을 일으켜 온 나라를 짓밟았으나 천만다행히도 미국을 위시한 유엔의 지원으로 이를 극복하게 되었고 한국 해군도 미국 해군으로부터 퇴역함정을 인수하여 해군건설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벌써 대한민국은 미국 해군으로부터 인수했던 모든 함정을 퇴역시키고 함정국산화시대를 맞이했으며 1990년대 중반부터 대한민국해군은 먼 바다에서 작전할 수 있는 大洋海軍을 건설하고 있다. 그런데 가까운 바다에서 작전할 수 있는 새로운 고성능 유형의 沿岸海軍도 재건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 해군의 올바른 발전을 위하여 이제까지의 해군전략사상, 해군임무 및 해군력유형 등 한국 해군의 해군전략 수용과정을 검토해 야 한다. 그리고 미래 수용방향을 도출함에 있어 특히 주변국과의 원만한 관계를 고려하여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하고 합리적이며 비용효과적인 해군전략으로의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따라서 이 글이 해군당국에서 고려하고 있는 해군전략과 다소 다른 방향의 발상을 하고 있다하여도 대한민국 해군발전을 위한 한 노병의 충정에서 비롯되었음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 海軍戰略思想의 수용


일반적으로 해군전략사상은 마한(Mahan)학파를 중심으로 해양통제와 해양무역에 중점을 두는 海洋海軍戰略思想과 오브(Aube)학파를 중심으로 연안방어와 통상파괴를 위한 해양거부에 중점을 두는 大陸海軍戰略思想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국가의 성장, 발전 및 번영이 해양진출과 해양무역으로 이루어 졌기 때문에 바다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통제하는 차원에서 사고하는 것이며, 후자는 국가의 성장, 발전 및 번영이 대륙진출과 영토 확장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바다를 이용하지 못하게 거부하는 차원에서 사고된 전략사상이다.

따라서 해양해군전략사상과 대륙해군전략사상은 배타적이며 대륙해군전략사상은 대륙전략사상에 종속적이다. 다른 표현으로 보면 해양해군전략사상은 海軍力 優位思想이며 대륙해군전략사상은 지상군 우위사상에 기본을 두고 있다.

 

1. 海洋海軍戰略思想의 수용

 

한국해군 엘리트들이 해군력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배경은 첫째로 대한민국은 三面이 바다로 둘러싸인 半島國이라는 지정학적 조건(위치) 때문이었다. 온 나라가 한 만 대륙으로 연결되고 삼면이 바다에 접하고 있으니 이러한 지정학적 조건에서 해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해군 엘리트들이 해양해군전략사상과 관련된 해군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된 두 번째 배경은 한국이 해양무역을 통해 고도의 경제성장을 기할 수 있었으므로 해상교통로(Sea Lines of Communication/SLOC)의 안전은 한국경제와 함수적 관계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해군 엘리트들이 이상의 두 가지 이유에 추가하여 세 번째 군사전략적 이유로 해양해군전략의 수용을 강조하는 배경은 한반도가 분단되었을 때마다 그 군사적 통일의 배경은 해양통제와 해양강습에 기초하고 있다는 역사적 사실 때문이다. 新羅가 삼국을 통일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 군사전략은 나당 연합부여상륙작전이었으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한 것도 나주상륙작전이 계기가 되었고, 6.25 한국전쟁에서도 인천상륙작전이 계기가 되어 攻勢移轉을 할 수 있었으며 중공군의 참전이 없었다면 분명히 국토통일을 기할 수 있었다. 한국해군 엘리트들의 신념은 한반도의 陸戰線이 협소하고 바다로 길게 뻗혀 있어 전선이 고착되기 쉬워서 해양통제를 실시할 수 있는 측이 上陸突擊投射라는 間接接近戰略을 유리하게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한반도 통일을 위한 해양해군전략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해군이 대륙해군전략보다 해양해군전략을 수용해야 한다는 이상과 같은 세 가지 이유는 이치에 맞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으나 문제가 되는 것은 비용의 문제였다. 한국의 일부 국방 및 육군 엘리트는 해군력과 공군력은 미 해군과 미 공군에 의존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군은 육군중심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편협하고 이기적인 논리를 내세워 한국 해군의 해양해군전략 발전을 크게 위축시켜왔다.

근본적으로 초창기 해군 엘리트들도 마한(Alfred Thayer Mahan)의 해양해군전략사상을 기조로 하는 미 해군으로부터 知的 영향을 받은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초기 해군전략개념을 동서남의 3개 해역에 해상기지체제 중심의 경비과업분대(Patrol Task Unit)를 운용한 것이다. 당시에는 비록 미흡한 해군력을 갖고 있었지만 그 운용은 해양해군전략사상에 따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군의 군사전략사고가 육군정권에 의해 압도적으로 지배됨에 따라 해군 엘리트들의 해군전략사고도 이에 순응하여 거의 모든 해군참모총장들이 대륙해군전략을 준비하고 수행하게 되었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한국해군은 해군전략사상에 대한 사고를 도외시하게 되었고 해양해군전략사상의 수용에 대한 哲學을 정립하지 못하였다. 해군사관학교와 해군대학에서는 분명히 마한의 해양해군전략사상과 관련된 교육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교육을 마치고 나온 해군장교들이 실무에서는 대륙해군전략사상에 빠지게 되는 이상한 현상을 보였다. 이와 같은 해양해군전략의 학습과 상이한 대륙해군전략의 적용은 한국해군이 당면했던 고질적 딜레마였다.


2. 大陸海軍戰略思想의 수용


1960
년대 까지도 한국해군은 미국해군으로부터 인수한 함정이 주축을 이루었으며 북한의 해군력에 비해 남한의 해군력이 우위에 있었다. 당시 한국해군의 주된 관심은 조기잡이 철에 서해북방한계선(NLL) 근해와 명태잡이 철에 동해북방한계선 근해의 어로보호에 집중되었으며 수십 척의 함정을 어로보호를 위한 과업분대(Task Unit)로 편성하여 선임함장이나 전대장(戰隊長)급 해군 대령 또는 戰團長급 해군 준장이 사령관으로 임명되었으며 해상현장에 있는 旗艦에서 과업분대사령관(CTU)으로서 직접 지휘하였다.

그러던 것이 동서해 북방한계선 근해의 수산자원이 고갈됨에 따라 대규모 어로보호 작전이 불필요하게 되었다. 따라서 어로보호 작전은 종료되었으나 북한은 1960년대 중반부터 간첩선을 엄청나게 침투시키는 한편 유도탄고속정(코마, 오사 급)을 확보해 한국해군에게 압박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간첩선 침투와 북한해군위협을 대응하는 과정에서 한국해군은 완전히 대륙해군전략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되었다.

한국해군은 전 해역을 4개의 海域司 개념으로 세분하여 해상에서 전투함정에 승함하여 지휘하던 警備課業分隊司令官(Commander Patrol Task Unit)의 위치를 육상 海域司令部로 옮겼으며 각 해역사령부는 책임해역 내에서 북한 간첩선의 침투를 저지하는 데 총력을 기우렸다. 간첩선은 특히 속력이 빠르며 유도탄고속정은 한국의 기존 전투함을 손쉽게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한국해군은 고속(高速)과 포()능력에 중점을 둔 저비용의 고속정을 양산하게 되었다.

이와 병행하여 전투함의 국산화에도 착안하여 1970년대 말 제10대 해군참모총장 황정연 제독(해사 3)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한국형 전투함(FFK)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그 뒤를 이은 제11대 해군참모총장 김종곤 제독(해사 4)은 이를 축소하고 보다 염가인 한국형 경비함(PCC)을 양산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보다 완벽한 대간작전태세(對間作戰態勢)를 위해 각 해역사를 다시 세분하여 경비전대(警備戰隊)로 구분하고 각 경비전대장을 해군대령으로 임명하였으며 육상의 높은 곳에 전탐소(Radar Site)를 설치하고 해안에 부두시설을 만들어 고속정편대를 전개시켰다.

이와 같은 해군작전개념은 마치 조선시대 조선해군이 대륙해군전략을 수용했던 경위와 너무나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었다. 장학근(張學根) 박사는 조선시대 해양방위사(朝鮮時代 海洋防衛史)라는 저서를 통해 조선 해군이 육군의 진관체제(鎭管體制)를 수용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였다. 세조(世祖) 대에 진관체제가 확립된 배경은 왜구(倭寇)의 침입양상이 산발적인 소규모 침입이었으며 방위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침탈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방어하는 조선의 입장에서는 왜구의 침입구역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전 해군력을 모든 포소(浦所)에 분산 배치하였다. 따라서 조선해군은 도()에 따라 수사(水使 : 水軍節度使)를 두고 그 휘하에 첨사(僉使)와 그 밑에 만호(萬戶)를 두어 전 해안을 분할하였으니 해군전략의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대륙해군전략을 수용했다.

이와 같이 수사(水使) 휘하의 첨사와 만호들이 지역방어 원칙에 따라 자기의 책임구역만 방어하고 있었기 때문에 적정(敵情)에 어두워 적이 연안 가까이 이르러서야 전투태세를 취하게 됨으로서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던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였다. 그래서 왜구의 침탈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적의 동정을 외해(外海)로부터 파악하여 연안에 이르기 전에 전투태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도만호 (都萬戶)에게 6개 선대(船隊)를 편성토록하고 해당해역을 순회하면서 경비하게 하였다. 그러나 조선조정에서는 방왜육전론(防倭陸戰論)이 방왜해전론(防倭海戰論)을 압도하고 우세하게 됨에 따라 해군의 해상근무원칙(海上勤務原則)이 무너지고 각 포소(浦所)에 성보(城堡)를 축조하면서 해군의 육군화(陸軍化)가 가속되었다. 결과적으로 좀도둑을 막으려다 엄천난 해군세력을 전 해안에 분산 배치함으로써 임진왜란을 당하여 경상도 해군이 각개격파 당하고 조선해군은 해양열세(Sea Inferiority)의 입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만일에 조선해군이 육군의 진관체제에 구속되지 않고 해양해군전략을 수용하여, 고려 말 정지 제독이 전투함대를 운용한 것과 같이, 왜구를 찾아 나아가 해양통제를 실시했다면 왜구의 침탈뿐만 아니라 임진왜란도 해상에서 미리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조선조정도 고려의 대마도 정벌사례를 따라 조선 초에 이종무(李從茂)에게 200여척의 원정함대(遠征艦隊)로 대마도를 정벌하게 하였으나 이와 같은 해양통제와 해양강습 중심의 해양해군전략은 계속되지 못하고 그 반대로 해양거부와 연안방어 중심의 대륙해군전략이 지배하여 조선의 해군전략을 망쳐놓고 말았다.

이상과 같이 조선의 대륙해군전략 수용배경을 살펴본 바에 의하면 한국해군은 아직도 북방경비한계선(NLL) 근해에서 주로 분산된 단독 경비를 하고 있으며 진형(陣形)으로 구성된 전투과업함대(Battle Task Force)를 운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한국해군이 비록 대양해군을 건설하고 있다 하여도 아직은 해양해군전략보다는 대륙해군전략을 수용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한국해군의 과업조직(Task Organization)은 아직도 바다를 중심으로 운용되지 않고 있으며 기지를 중심으로 운용되고 있고 함대결전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없다.


3. 均衡海軍戰略思想의 수용


일반적으로 해양국은 해양해군전략사상을, 대륙국은 대륙해군전략사상을 수용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볼 때 그러면 한국과 같은 반도국은 어떠한 해군전략사상을 수용해야 하느냐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며 적어도 바다의 전략을 다루는 이론가라면 그리고 한국해군 엘리트라면 이 문제를 풀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필자는 통일한국의 해군전략론을 통하여 조화적 해군전략사상을 언급한 바 있으나 균형해군전략사상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된다. 그 이유는 필자가 1999년에 균형해군전략론(均衡海軍戰略論)을 저술한 것과도 관련된다. 간단히 표현하면 한반도의 대한민국이 북한의 해군위협을 통제하면서 주변강대국 해군위협을 견제하려면 숙명적으로 해양전략사상과 대륙전략사상의 조화에 중점을 둔 균형해군전략사상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해군은 북한의 간첩선 침투에 시달려왔기 때문에 1980년대 초에 전 해군참모총장 김종곤 제독은 완벽한 대간작전태세(대간작전태세)를 확립하기 위하여 각 해역사를 세분하는 대간경비전대(對間警備戰隊)를 설치하고 자신이 구상한 한국형 경비함(PCC)을 경비전대 해역의 외해(外海)에 배치하고자 준비하였으며, 그리고 고속정편대를 내해기지에 분산 배치하는 작전태세를 수립하였다. 그리고 전대장의 지휘소에 전탐기지를 설치하여 레이다를 통해 경비함과 고소정편대를 포함하여 각 경비요소를 지휘토록 하였다. 이와는 별도로 북한의 정규전 위협에 대해서는 구축함으로 구성되는 전투전대에 의해 대응하려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시도는 해양해군전략사상에 따른 해양통제와 대륙해군전략사상에 따른 해양거부를 조화시키는 균형해군전략사상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고 양개 전략사상을 각각 분리해서 수용하는 것이며 보다 정확히 정의하면 대륙해군전략사상에 편중된 수용을 보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한국해군의 지난 반세기에 걸친 해군전략사상의 흐름을 종합하면 초대해군참모총장 손원일 제독으로부터 시작된 초기 미 함정인수시대에는 비록 인수함정으로 구성되었으나 경비과업분대사령관(Commander Patrol Task Unit)이 해상의 기함(flag ship)에서 경비과업분대를 지휘하는 비교적 해양해군전략방식을 적용했으나 그 이후로 육상의 해역사령부 개념이 대입되고 이어서 전 해군참모총장 김종곤(해사 4) 제독시대부터는 해역사내에 많은 경비전대가 설치되어 고속정(PKM), 초계함(PC) 및 호위함(FF) 중심으로 해군력이 발전됨에 따라 한국 해군은 완전히 대륙해군전략사상에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황정연(해사 3) 전 해군참모총장이 추진한 한국형 호위함(FF)도 너무 크고 고비용이라는 이유로 건조척수를 크게 줄이고 새로운 소형 초계함(PC)을 양산함으로써 한국 해군은 대간작전태세 중심으로 발전되었다.

1990년대 중반에 김영삼 전 대통령은 독도 영유권 문제가 일본으로부터 제기되자 국방장관에게 해군력의 강화방안을 보고토록 지시했으며 당시 해군참모총장이었던 안병태 제독(해사 17)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대양해군 건설 준비라는 획기적이고 대담한 복무계획을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다. 이를 계기로 한국 해군은 유도탄구축함(DDG)과 그리고 대형 상륙함(LPX) 등을 중심으로 대양해군력을 발전시키게 되었으며 이제 연안해군에서 대양해군으로의 새로운 시대를 지향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초창기 인수함정시대에는 해양해군전략사상을 선호하는 전략사고를 보이다가 1960년대 후반부터 군사정권이 들어서자 대륙해군전략사상이 지배하는 전략사고를 보였으나 1990년대 중반부터 문민출신 대통령이 집권하게 되면서 육군의 정치적 영향력이 완전히 소멸하게 되자 다시금 해양해군전략사상이 본격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자는 해사동기(13)인 이석희(李奭羲) 예비역 해군대령과 함께 한국해양전략연구소(KIMS)의 후원으로 균형해군전략론(均衡海軍戰略論)이라는 공저를 발간하게 되었으며, 앞으로 한국해군은 해양해군전략사상과 대륙전략사상을 조화와 협동의 차원에서 균형해군전략사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하기에 이른 것이다. 균형해군전략사상의 기본개념은 북한해군에게는 해양통제에, 주변국해군에는 해양견제(현존함대)에 중점을 두는 전략이며 이를 위해 대양전투함대(원해전투함대)(OBF : Ocean Battle Force)과 해역전투함대(연안전투함대)(LBF : Littoral Battle Force)의 조화와 협동을 고려한 해군력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발상으로 한국해군은 균형해군을 발전시켜야 하며 너무 대양해군이나 또는 연안해군에 치우쳐 해군세력을 발전시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균형해군전략사상에 대한 한국해군의 공식적인 반응은 아직까지 없었지만 한국해군이 최근 추진하고 있는 함정유형을 보면 해역전투함대 세력으로 고성능의 해역전투함(유도호위함)(LCS/FFG : Littoral Combat Ship)을 추진하고 있으며 또 한편 고성능의 유도탄고속함(LCB/PKG : Littoral Combat Boat)을 발전시키고 있고, 대양전투함대 세력으로 유도탄구축함(DDG), 유도탄호위함(FFG) 및 대형 수송함(LPH)을 건조하하였다. 이렇게 볼 때 한국 해군은 실제로 균형해군전략사상을 이미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 海軍任務의 적용

 

한국해군의 임무와 역할이 어떻게 정의되고 있느냐의 문제는 몇 마디 애매한 단어의 나열만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며 사실상 한국해군이 어떠한 해군전략사상을 적용하고 있느냐와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검토되어야 당연하다.

나라의 엘리트와 국민의 해군전략사고가 바다에 나아가 해양통제를 실시하여 국가이익을 증진하고 국가안보를 보장하려는 것과 비교하여 연안방어와 통상파괴 중심의 해양거부를 실시하려는 것은 해군전략과 해군력유형에서 엄청난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육군과 공군에 비해 해군은 임무 정의에 특별한 용어를 사용하게 된다. 그러므로 해군전략사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다면 그 나라의 국방 및 해군 엘리트들이 사용하고 있는 해군임무에 대한 용어는 사실상 전혀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영해를 수호한다거나 또는 바다를 지킨다는 말을 흔히 사용해왔으며 이것을 보다 강조하기 위하여 영해를 사수(死守)한다거나 바다를 철통같이 지킨다는 표현을 하고 있는데 대하여 큰 실망을 주고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표현들은 해군임무의 정의에서 볼 때 대륙해군전략사상에 젖은 표현이기 때문이다.

군사전략사상이 사고체계(思考體系)라면 군사전략이론은 이를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지식체계(知識體系)이며 관념적 용군원리(用軍原理)를 다루게 된다. 그리고 군사전략이론을 검토하여 군사교리로 공식화하며 이는 실천적 용군지침을 제공하기 때문에 행동체계인 것이다. 따라서 군사전략사상을 모태로 하여 군사전략이론이 연구되고 발전되며 권위당국에 의해 군사전략교리로 채택되는 것이다. 미 해군의 경우 해군교리교범 1, 해군전(Naval Warfare)이나 또는 한국해군의 경우 한국해군기본교리는 해군전략사상을 해군전략이론으로 정립하여 해군전략교리로 채택된 것이다.

따라서 한국해군의 임무는 해군전략사상과 해군전략이론을 이해해야만 정의될 수 있으나 한국해군은 대륙해군전략사상, 해양해군전략사상 및 균형해군전략사상 중에서 어떠한 사상에 중점을 두고 체계적으로 발전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해군임무가 합리적으로 정의되어 있느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한국해군이 해양해군(대양해군)과 대륙해군(연안해군)의 전형적 임무에 대해 어떠한 적용을 해왔는가를 검토하고자 한다.

     

1. 海洋海軍任務의 적용

 

현대적 의미의 해양해군임무는 크게 보아 전시 힘의 적용전략(適用戰略)으로 바다에서의 전쟁(War at Sea)바다로부터의 전쟁(War from the Sea)이라는 임무가 있으며, 평시 힘의 억제전략으로 억제(抑制 : Deterrence)와 해군시위(海軍示威/前方示威 : Naval Presence)라는 임무가 있다. 이 이외에도 전쟁이외의 해군작전(Naval Operations Other Than War : NOOTW), 해상수송(Sealift) 등의 임무가 있지만 여기에서는 해양해군임무가 대륙해군임무와 다른 점만을 언급하고자 한다.

필자는 통일한국의 해군전략론을 통하여 한국해군전략사고의 문제를 다루면서 현대적 의미의 전시 해양해군임무는 힘의 적용전략으로 해양통제(Sea Control)와 전력투사(해양강습 : Sea Strike/Power Projection)라는 임무가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단순히 해양통제보다는 보다 광의의 해군력 사용을 표현하는 개념 즉, 해양지배, 해양통제, 해양견제(현존함대) 및 해양거부 등의 개념이 바다에서의 전쟁(War at Sea)개념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힘의 적용전략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바다에서의 전쟁은 해양우세(Sea Superiority)의 상황에서 해양통제를 적용할 수 있으면 가장 바람직한 것이지만 해양통제를 적용할 수 없는 해양열세(Sea Inferiority)의 상황에서도 해군력 사용을 표현하는 기타의 개념 즉, 해양견제(현존함대)나 또는 해양거부를 적용해야 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해양우세의 상황에서는 해양지배나 또는 해양통제를 적용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전형적 해양해군의 임무를 먼저 정의하고 이에 대하여 한국의 국방 및 해군 엘리트들이 보인 수용의 자세를 논의해 보고자 한다.

 

. 바다에서의 戰爭임무의 적용

해양해군전략사상을 수용하는 해양해군은 바다에서의 전쟁(War at Sea)을 실시함에 있어 해군력 사용을 표현하는 개념으로 해양지배, 해양통제 또는 해양견제(현존함대)의 적용을 고려할 수 있다. 적보다 해양우세(海洋優勢)의 경우에는 바다에서의 전쟁을 실시함에 있어 당연히 해양지배(海洋支配 : Command of the Sea)나 또는 해양통제(海洋統制 : Control of the Sea)를 적용해야 하지만 적보다 해양열세의 경우에는 당연히 해양견제(海洋牽制/現存艦隊 : Sea Contain/Fleet-in-being)를 적용하는 것이 올바른 수용의 자세일 것이다.

 

° 海洋統制의 적용

해양통제는 해양해군이 해군역할을 수행하는데 근본이다. 해양통제는 제한된 해역과 제한된 시간에 우리의 자유로운 해양사용을 보장하고 적의 해양사용을 거부함으로써 육지에 힘을 투사하는 우리의 능력을 직접적으로 지원한다. 해양통제는 미 해군교리교범 1, 해군전에 의하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항을 가능하게 한다.

 

해상교통로의 보호

적의 상업적, 군사적 해양사용의 거부

육지에 전력투사를 위한 작전구역의 설정 및 상륙작전의 지원

전방에 전개된 전투세력에 대한 해군 군수지원의 보호

 

해양통제는 다음과 같은 결정적 작전을 통하여 성취될 수 있다.

 

적 함정, 잠수함, 항공기 또는 기뢰의 파괴 또는 제압

적 지휘 및 통제의 무력화 또는 분쇄

적 해양통제세력을 지원하는 육상기지 시설의 파괴 또는 제압

도서, 패쇄점, 반도 및 해안에 따라 연안기지의 점령

수중, 해상 및 상공의 적 기동성을 예방하는 패쇄점에서 방책작전 실시

어느 차원에서도 해양통제를 설정함으로써 바다로부터 적 해안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여 아군의 전력투사, 투입 및 재보급을 위한 기회를 연다. 그러나 해양통제는 공간적(Spatial), 시간적(Temporal) 제한을 모두 갖고 있다. 해양통제는 모든 시간에 모든 바다에 대한 절대적인 통제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해양통제는 방해가 없는 해양작전을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특정한 구역에서 일정한 기간 동안 요구된다.

이상과 같은 정의만으로 한국해군이 해양해군으로 해양통제를 해야 한다고 한국정부와 국방부가 설득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해양통제임무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막연히 해양통제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해양통제는 공세적 해양통제와 수세적 해양통제로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전자는 적 함대를 봉쇄하거나 격멸할 목적으로 전투부대를 운용하는 것이다. 공세적 해양통제의 적용국면은 출항통제(出航統制 : Sortie Control), 협수로통제(狹水路統制 : Choke Point Control), 광역통제(廣域統制 : Open Area Control) 및 국지통제(局地的 交戰 : Local Engagement)를 적용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해양통제의 적용국면은 터너(Stansfield Turner) 제독이 미 해군의 임무를 논하면서 제시한 것으로써 대부분이 봉쇄(Blockade)와 함대결전(Decisive Fleet Battle)으로 이루어진다. 해양통제를 위하여 제일 먼저 사고해야 할 전략은 적함대의 근원이 되는 적 해군기지를 봉쇄하거나 또는 파괴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출항통제가 최우선이다. 넬슨 제독시대에 영국해군은 프랑스의 투롱 항과 브레스트 항을 봉쇄함으로서 해양통제를 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해군기지의 요새화가 강화되고 항공기, 잠수함, 유도탄정 및 지대함유도탄 등이 등장함에 따라 항구봉쇄 즉, 출항통제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래도 적 기지보다 훨씬 강한 전투능력을 보유한 항모전투함대(航母戰鬪艦隊 : Carrier Battle Force)를 보유하고 있다면 아직도 출항통제가 해양통제를 달성하기 위한 유용한 국면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것이 당연한 것과 같이 적 함대를 봉쇄하거나 격멸하려면 적 해군기지를 공격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공세적 해양통제에서 두 번째로 사고해야 할 적용국면은 적 함대가 모기지(母基地)를 출항하여 이동하는 과정에서 만일에 병목점(Choke Point)과 같은 협수로가 있다면 이러한 협수로를 통과할 때 효과적으로 적 함대를 격멸할 수 있다. 협수로통제(狹水路統制)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제독이 견내량해전(見乃梁海戰)과 명량해전(鳴梁海戰)에서 대승한 것이나 일로전쟁(日露戰爭) 때 도고함대가 대한해협에서 로제스트벤스키함대를 격멸한 것만 보아도 대단히 유용한 해양통제의 적용국면임을 알 수 있다.

공세적 해양통제에서 세 번째로 사고해야 할 적용국면은 병목점을 통과한 적 함대와 넓은 바다에서 함대결전을 실시하는 광역통제(廣域統制 : Open Area Control)인 것이며 해양통제의 마지막 네 번째 국면은 아 해역에서 적 함대의 작전선(作戰線)을 예상하고 싸우는 국지통제(局地的 交戰 ; Local Engagement))이다. 터너 제독이 해양통제를 이렇게 적 항구로부터 아 항구에 이르는 과정으로 본 것은 당연한 것이다. 만일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조선이 주력전선이었던 판옥선대(板屋船隊)를 이용하여 터너 제독의 해양통제 적용과정을 적용했다면 협수로통제만 제외하고 출항통제는 대마도에 대해, 광역통제는 대마도-부산간 해역에서 그리고 국지통제는 부산앞바다에서 실시되어야 했으나 너무나 실망스럽게도 조선은 전 해군세력을 전 해안에 분산 배치하였다.

이와 같은 공세적 해양통제에 비하여 수세적 해양통제는 해상교통로(Sea Lines of Communication/SLOC)에 운항하는 선단(船團)을 호송하기 위하여 호위전대(護衛戰隊)를 운용하는 것이다. 평면전시대(平面戰時代)에는 함대결전에 승리하고 해양통제를 실시할 수 있는 측이 해상교통로의 자유로운 사용을 보장받을 수 있었으나 입체전시대(立體戰時代)에는 수상함보다 항공기와 잠수함이 해상교통로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선단을 호송해야 하는 수세적 해양통제는 지속되어야 한다.

이제까지 설명된 해양통제의 정의와 그 적용과정으로 볼 때 한국정부와 국방 엘리트가 한국해군에게 해양통제임무를 부여한다는 것은 한국해군에게 대륙해군전략사상이 아니고 해양해군전략사상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해양통제라는 용어의 의미와 해양통제가 의미하는 해군전략을 잘 모르기 때문에 정부, 국방 및 해군 엘리트 간에 해양통제라는 용어로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으며 설령 해양통제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하여도 진정으로 그 의미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한국정부와 국방 엘리트들이 해양통제를 이해하고 한국해군에게 해양통제임무를 부여하려면 당연히 한국해군에게 연안해군(Coastal Navy)을 강요해서는 안 되며 또한 대양해군이 과도한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연안해군이라 함은 대륙해군전략의 일환인 연안방어(Coastal Defense)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해양거부(Sea Denial)가 주 임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군의 역할과 임무를 정의하고 이해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해양해군전략사상과 대륙해군전략사상을 구별하고 이해하는 데 두어야 하며 무조건 연안해군과 대양해군으로만 구분해서 정의하고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된다. 물론 연안해군은 대륙해군전략사상에서 유래된 해군이며 대양해군은 해양해군전략사상에서 유래된 해군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해군력 형태보다는 해군력 운용개념인 것이다. 대양해군을 갖고도 해양거부를 위해 분산배치하고 개별적으로 운용하면 대륙해군전략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며 연안해군을 갖고도 집중적으로 함대결전에 운용하여 연안해역에 대한 해양통제를 실시하려 한다면 해양해군전략사상을 따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단순히 해군력 형태 즉, 연안해군과 대양해군에 따라 해군임무를 부여하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따라서 필자가 해군전략사상을 해양해군전략사상과 대륙해군전략사상으로 구분하고 양개 사상의 선택에 따라 해양해군과 대륙해군으로 분류하는 이유는 해양통제와 해양강습(전력투사)에 중점을 두는 해군이 전자이고 연안방어와 통상파괴를 실시하는 해양거부에 중점을 두는 해군이 후자이기 때문이며 이렇게 해군전략사상의 차이에 따라 해군을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대양해군을 갖고 있다 하여도 그 나라의 군사전략사상이 대륙전략사상 중심이면 연안해군을 운용하는 것과 같은 오류를 범하기 쉬운 것이다. 특히 러시아나 중국 같은 나라들은 오랫동안 대륙해군전략사상에 젖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대양해군을 건설한다 해도 그 운용은 해양해군전략사상을 따라왔던 미국과 같은 해양통제가 아니라 대륙국의 전형적 해양거부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개의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한국해군이 해양통제, 해양견제(현존함대) 및 해양거부의 조화를 기할 수 있는 균형해군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필자의 균형해군전략론은 대양해군과 해역해군을 조화와 협동에 중점을 두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 海洋牽制의 적용

일반적으로 해양해군은 바다에서의 전쟁(War at Sea)에서 봉쇄와 함대결전을 통해 해양통제를 실시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것은 아 해군력이 적 해군력에 비하여 해양우세의 조건에 있을 때나 또는 해양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한국해군이 보다 열세한 북한해군에 대해서는 바다에서의 전쟁으로 해양통제를 적용할 수 있지만 보다 우세한 일본이나 또는 중국해군에 대해서는 무조건 봉쇄나 함대결전을 통해 해양통제를 실시할 수는 없다. 이러한 해양열세의 조건에서 해양해군으로 실시해야 할 바다의 전쟁은 해양통제가 아니라 해양견제다.

해양견제(현존함대)는 우리의 해양사용을 보장하고 적의 해양사용을 거부하는 해군력 사용과 관련된 용어개념 중에서 해양지배(제해권), 해양통제 다음으로 그 강도 면에서는 가장 약한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해양견제는 곧바로 해양통제를 달성하기 어려운 해양열세 즉, 열세함대의 입장에서 가능한 한 적 주력함대와의 함대결전을 피하고 아 해군세력 보존에 최선을 다하면서 적의 자유로운 해양통제와 전력투사를 견제하고 적 주력함대로부터 분리된 소부대를 각개 격파하여 적 세력을 약화시키며 궁극적으로 절호의 기회를 포착하여 적 함대를 격멸하고 해양통제를 달성하려는 것이다.

필자가 서양의 현존함대(Fleet-in-being) 용어를 우리의 해양견제(海洋牽制 : Sea Contain) 용어로 바꾸어 부르는 이유는 첫째, 바다에서의 전쟁에서 바다(해양)를 지배(Command), 통제(Control), 견제(Contain) 또는 거부(Deny)하는 차원으로 해군력 사용을 나타내는 용어개념을 정립하려는 의도가 있고 둘째, 한국해군은 지금뿐만 아니라 통일이 되어도 주변국과 발생할 수 있는 바다에서의 전쟁에서 해양지배와 해양통제보다는 해양견제와 해양통제의 합리적 적용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데 근거하고 있다. 이와 같은 해양견제의 적용논리에 대해 함대결전주의자(艦隊決戰主義者)들은 패배주의(敗北主義)라고 비난하겠지만 한국해군이 해양열세가 불가피한 조건에서 바다에서의 전쟁에서 무리하게 해양통제만을 적용할 수는 없다. 한국해군이 균형자 역할을 한다거나 또는 비토(veto) 역할을 한다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상 주변국과 바다에서의 전쟁에서 해군력 사용과 관련되는 적절한 개념을 내세우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셋째, 우리나라의 해군사상은 이순신 제독이 임진왜란에서 해양열세의 조건에서도 해양견제와 해양통제를 훌륭하게 병용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이순신 제독의 바다에서의 전쟁에서 해양견제와 해양통제의 합리적 적용을 따라야 할 필요가 있다.

넷째, 해양견제와 해양통제의 합리적 적용개념에 대해 정부, 국방, 합참 및 해군 엘리트들이 이해하고 대비해야만 선조(宣祖)와 이순신 그리고 권율과 원균 사이에 있었던 바다에서의 전쟁에서 해군력 사용에 대한 오해와 갈등이 재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예방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해양견제는 소중한 함대를 상실할 수도 있는 무모한 함대결전을 회피 즉, 함대피전(艦隊避戰)을 하면서 해군력을 주의 깊게 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직 함대결전과 승리만을 바라는 정부, 국방 및 합참 엘리트들은 바다에서의 전쟁에서 해양견제와 해양통제의 합리적 적용 즉, 함대결전과 함대피전의 선택적 적용 개념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한국해군은 당연히 해군교리교범에 균형해군전략사상의 수용과 함께 해양견제와 해양통제의 조화 즉, 함대결전과 함대피전의 적용 개념을 바다에서의 전쟁개념으로 수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 바다로부터의 戰爭임무의 적용

미 해군과 같은 대양해군은 바다에서의 전쟁보다 바다로부터의 전쟁에 대하여 해군임무의 비중을 크게 두고 있다. 그 이유는 미 해군의 해양통제를 거부할 수 있는 기타 국가의 해군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해군의 경우는 북한해군을 제외하고 주변국해군에 대하여 바다에서의 전쟁에서 해양통제보다는 해양견제와 해양통제의 합리적 적용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바다로부터의 전쟁인 해양강습(海洋强襲/戰力投射 : Sea Strike/Power Projection)에 대한 준비가 미흡한 측면이 있을 수 있다.

바다에서의 전쟁은 바다의 표면(表面), 수중(水中) 및 공중(空中)에서 일어나는 전투와 관련된 임무분야이며 바다로부터의 전쟁은 지상군에 대한 해군력의 충격(衝擊)과 관련된 임무분야이다. 그리고 바다로부터의 전쟁은 해양강습(전력투사)과 같은 의미이며 함포지원사격, 순항유도탄투사, 전술항공투사(戰術航空投射) 및 상륙돌격투사(上陸突擊投射) 등을 통해 실시된다.

이상과 같은 바다로부터의 전쟁에 대하여 한국해군은 어떠한 수용의 자세를 보여 왔고 앞으로 어떠한 수용을 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짚어 볼 필요가 있다. 한국해군은 대양해군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보도된 바에 의하면 유도탄구축함(DDG), 유도탄호위함(FFG)과 대형상륙함(LPX) 등뿐이며 사실상 바다에서의 전쟁바다로부터의 전쟁에서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하는 핵추진항공모함(CVN)이나 또는 핵추진잠수함(SSN)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으며 실망스럽게도 대형상륙함(LPX)이나 또는 경항모와 공기불요방식(AIP)의 중()잠수함(SS) 등에 대해 선호하고 있다.

한국해군이 바다에서의 전쟁뿐만 아니라 바다로부터의 전쟁을 실시하려면 핵추진항모강습함대(Nuclear Powered Carrier Strike Force/CSG)와 함께 상륙준비전대(Amphibious Ready Group/ARG)를 준비해야한다. 핵추진항모강습함대는 최소한 4-5만 톤 급의 최소핵추진항모(Minimum CVN), 유도탄구축함(DDG), 유도탄호위함(FFG) 및 최소핵추진공격잠수함(Minimum SSN)으로 구성해야 하며 고정익 함재기 30-40대 정도는 운용할 수 있어야 하고 아울러 함대지순항유도탄 공격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항모전투함대는 해전(Sea Battle)뿐만 아니라 해양강습(Sea Strike)을 위하여 최소한 적 1개 육상공군기지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항모전투함대와 함께 적정규모의 대형상륙함들로 구성되는 상륙준비함대를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상륙준비함대는 통일한국시대보다 오히려 현 분단한국시대에 크게 요구되는 전력소요이기 때문에 가능한 한 한미 연합상륙작전의 범주에서 볼 필요가 있다.

 

. 抑制前方示威임무의 적용

해양해군의 임무와 역할에서 억제(抑制 : Deterrence)와 전방시위(前方示威 : Forward Presence)는 전쟁의 억제와 분쟁의 예방차원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미 해군은 억제를 재래식 억제(Conventional Deterrence)핵억제(Nuclear Deterrence)로 구분하고 있으나 한국해군은 전쟁억제(戰爭抑制)라는 용어로서 재래식 억제와 전방시위 임무를 포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해군은 평시 대부분의 해군작전을 동서북방한계선 근해의 전방시위(Forward Presence) 차원에서 실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해군력의 운용개념으로 경비작전, NLL 침범예방, 도서방어, 어로보호, 여객선호송, 해양측방통제 등을 포함하는 전방시위 임무를 해군기본교리에서 조차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한국해군은 전방접적해역에 대한 경비작전을 포함한 해군력 운용을 일상시위(日常示威 : Routine Presence)의 관점에서 수용해야 하며 전방접적해역에서 위기가 발생할 때는 위기대응(危機對應 : Crisis Response)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한국해군이 억제에 이어 전방시위를 해군임무로 수용하면 한미 연합해군작전을 실시함에 있어 상호이해와 협력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억제를 수용함에 있어서도 한국해군은 재래식 억제뿐만 아니라 한미 연합전략의 차원에서 미국의 핵우산을 고려해 한미 연합핵억제 즉,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도 포함시킬 수 있어야 하며 전방시위를 수용함에 있어서도 한국해군은 예방적(preventive) 차원의 일상시위와 반응적(reactive) 차원의 위기대응을 포함시킬 수 있어야 한다.

크게 보면 한국해군의 해군시위 임무는 첫째, 대한민국 또는 동맹국의 이익에 적대적인 행동을 억제하며 둘째, 대한민국 또는 동맹국의 이익을 위한 행동을 고무시키려는 두 가지의 광범한 목적을 성취하려는 데 있다. 그리고 예방적 전개(豫防的 展開)에서는 아 측의 함대세력능력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의 유형에 대하여 관련이 있어야 하고 근처의 기타 해군세력에 대해 크게 열세해서는 안 되며 필요시에 즉각적인 증강(增强)이 가능해야 한다. 반면에 반응적 전개에서는 우리의 해군세력이 즉각적으로 믿을 수 있는 위협을 줄 수 있어야 하며 실제로 전투는 하지 않지만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2. 大陸海軍任務의 적용


현대적 의미의 대륙해군임무는 힘의 거부전략으로 연안방어(沿岸防禦 : Coastal Defense)와 통상파괴(通商破壞 : Commerce Destruction)가 있으며 힘의 억제전략으로 전략적 억제(戰略的 抑制 : Strategic Deterrence) 임무가 있다. 이와 같은 대륙해군의 각 임무에 대한 정의는 졸저인 한반도의 해상전략론에서 풀이되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한국의 정부, 국방 및 해군 엘리트들이 대륙해군임무에 대해 보인 적용의 자세를 논의해 보고자 한다.


. 沿岸防禦임무의 적용

해군에게 연안방어임무를 부여하는 국가는 국가군사전략사상이 대륙전략사상에 따라 지상전략(地上戰略)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므로 해군전략을 육군전략과 동위의 개념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국가군사전략에서 부차적인 것으로 본다. 한 나라의 국가성장과 경제발전이 전적으로 대륙으로의 진출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해군은 단지 연안이나 영해를 방어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전략사고다.

이와 같은 연안방어임무가 본격적으로 체계화된 것은 1880년대 초에 프랑스의 해군신학파(Jeune Ecole)에 의해 주장되기 시작했다. 그들의 시각으로는 해양력(Sea Power)은 무역과 식민지에 관련되는 것이며 보다 큰 유럽 국가들과의 관계에서는 부차적 역할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상군이 대륙으로의 진출을 주도하고 해군은 단지 해양강국 즉, 영국의 개입을 거부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해양력은 유럽의 대륙강국 군사사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고 대륙전략의 서자(庶子) 또는 육군의 시녀(侍女)로 남게 된 것이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독일도 대륙세력(Land Power)과 해양세력(Sea Power)간의 투쟁과 관련된 지정학적 사고에서 해양세력의 성장에 관한 마한의 해양력 이론을 따르지 않고 유라시아 심장지역론(心臟地域論)을 주창한 매킨더의 이론을 국가정책으로 수용함으로서 해군은 단지 연안방어와 통상파괴가 주 임무가 되었다.

더욱이 1880년대의 전쟁들로부터 얻은 전반적인 결론은 고속어뢰정(高速魚雷艇)의 출현이 다음 세대의 해전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보게 되었으며 특히 고속어뢰정은 대륙해군의 재정문제를 해결해 주면서 기동성 있는 연안방어를 위하여 무한한 가치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프랑스 해군신학파의 지도자라 할 수 있는 오브(Theophile Aube) 제독의 해군전략에 기초가 되었다. 오브 제독의 전략은 비판 없이 너무나 광신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하였으며 어뢰정에게 광신한 나머지 독일, 오스트리아 및 소련에서도 전함계획(戰艦計劃)을 취소하였으며 영국해군에게까지도 전함건조에 영향을 주었다. 어뢰정은 엄청난 파괴력과 고속의 기동력을 이용하여 다윗(David)이 골리아드(Goliath)를 물리친 것과 같이 기습적으로 운용될 때 큰 위협요소로 등장하게 되었다.

한국해군은 연안방어임무를 수용함에 있어 다소 특이한 현상을 보였다. 북한은 분명히 수많은 어뢰정과 유도탄정을 보유함으로서 대륙해군전략을 선택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은 해양통제와 해양무역을 위해 분명히 해양해군을 발전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고속정들에게 대응하기 위해 고속정(PK, PKM PGM)을 발전시켰으며 더욱이 북한이 다수의 고속간첩선을 침투시킴에 따라 이에 대응하기 위해 고속정의 양산을 가속화시켰다. 북한의 대륙해군학파들은 비용이 크게 덜 드는 소형의 어뢰정과 유도탄고속정으로 대형함을 공격하기 위한 사고를 하였으나 한국의 대륙해군학파들은 북한의 어뢰정과 유도탄정보다도 비용이 덜 드는 고속포정(PK, PKM)을 양산하여 북한의 고속정들과 간첩선들에 대항하려 했다.

이러한 고속정 중심의 한국해군력 발전은 특히 국방 및 합참 엘리트들이 선호했던 것으로서 해군전략사상에 관계없이 고속정은 고속정으로 대응한다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수용되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전방해역의 북한해군위협뿐만 아니라 후방해역의 북한 간첩선 침투를 막기 위해 많은 고속정, 고속정기지 및 육상전탐기지가 필요하게 되었고 북한해군의 연안방어체제와 같이 한국해군도 본격적으로 연안방어체제로 전환되었으며 특히 1970년대 말부터 전 해군참모총장 김종곤 제독은 조선시대의 진관체제와 같이 전 해역을 세분화하여 경비전대체제를 만들어 전대장 책임체제를 확립하였고 높은 산에 위치한 육상전탐기지에서 전대장들이 경비책임구역을 감시하고 고속정편대를 지휘토록 했다. 그리고 보다 외해는 한국형 초계함(PCC)을 배치한다는 개념이었다.

따라서 한국해군은 전투함과 고속정의 국산화시대에 세계해군사상 유래가 없는 연안방어해군이 되었으며 고속정은 고속정으로 대응한다는 단순한 생각이 한국해군을 연안방어해군으로 만든 것이다. 일반적으로 국방 및 합참 엘리트들은 대부분이 지상전략학파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전차(戰車)는 전차로, 항공기는 항공기로 그리고 고속정은 당연히 고속정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고 한국해군의 일부 초기 대륙해군학파들은 앞장서서 이를 지지하였다.


. 通商破壞임무의 적용

오브 제독을 중심으로 프랑스해군의 신학파(新學派 : Jeune Ecole) 들은 프랑스는 자급자족을 할 수 있었고 영국은 해양무역에 의존하였기 때문에 프랑스의 대영해군전략(對英海軍戰略)을 주로 영국의 해상교통로를 파괴하는 데 집중하였다. 따라서 19세기 프랑스해군은 연안방어를 위한 어뢰정과 통상파괴를 위한 순양함 중심으로 발전되었으며 신학파들의 전략사고는 약자를 기습공격하고 강자를 피하는 기습전략(guerre de course)을 선호하였다.

독일해군도 잠수함을 이용하여 통상파괴전을 구사했으며 오늘 날에도 잠수함의 통상파괴임무는 변함이 없으나 이제 잠수함은 전략적 억제(Strategic Deterrence)뿐만 아니라 해양통제와 전력투사(대지유도탄투사 및 특수작전) 임무 수행에도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볼 때 한국해군은 대륙해군전략을 수용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연안방어임무에 비하여 통상파괴임무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북한은 대륙무역에 의존하며 해양무역은 극히 제한되어 있어 북한에 대한 통상파괴소요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1970년대에 터너 제독이 미해군의 임무(The Mission of the U.S. Navy)를 논하면서 해군력의 입력과 출력에 대해 언급한 내용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터너 제독은 해군력을 입력(入力 : Input)보다는 출력(出力 : Output) , 임무(任務)의 차원에서 보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입력의 차원에서 본 전투함정, 항공기 및 잠수함 등의 작전요소보다는 이와 같은 입력이 협동하여 어떠한 출력 즉,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출력을 생각하지 않고 입력시킨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사실상 한국해군은 출력보다 입력을 중심으로 사고했던 것이 지배적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결과적으로 역대 해군참모총장들은 대부분 자기의 임기 동안에 고속정이나 또는 전투함의 새로운 유형을 입력시키려는 의욕을 보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해양열세 즉, 열세함대(Inferior fleet)의 입장이 되면 연안방어와 통상파괴임무가 선택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경향이 있으나 이와 같은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마한은 네덜란드해군이 영국해군에 비해 열세함대의 위치에 있었으나 현존함대를 구사하여 적절한 전략적 집중으로 영국 우세함대로부터 이탈한 소부대들을 격멸한 사례를 지적하면서 해군의 연안방어임무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대하였다.

한국해군은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하여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재래식 잠수함을 갖기 시작하여 독일제 1200톤급 209형 잠수함을 확보하였고 이어서 공기불요추진(空氣不要推進 : AIP)능력이 있는 1800톤급 214형 잠수함을 진수시켰다. 이와 같이 비록 늦게 잠수함을 확보하기 시작했지만 이제 한국해군은 상당한 수준의 잠수함에 의한 통상파괴능력과 대잠 및 대함공격능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3. 均衡海軍任務의 적용

 

한국해군이 균형해군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은 주변국해군에 대하여 해양견제를 실시하고 북한해군에 대하여 해양통제를 실시한다는 의미가 있다. 주변국해군에 대해서는 앞으로 발전시킬 대양전투함대(Ocean Battle Force : OBF), 북한해군에 대해서도 앞으로 발전시킬 해역전투함대(Littoral Battle Force : LBF)로 각각 해양견제와 해양통제를 실시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필요시에는 양개 전투함대가 협동작전을 실시함으로써 그 시너지 효과로 해양우세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대양전투함대(OBF)로는 주변국 해군에 대하여 해양견제를 실시하려는 것이지만 여기에 해역전투함대와의 협동작전이 이루어지면 주변국 해군에 대해서도 해양통제를 실시할 수 있다는 작전술적 함의(含意)가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균형해군임무는 한국해군이 이제까지 수용해온 것이 아니고 앞으로 한국해군은 국가통일에 이르는 과정에서 균형해군을 발전시키고 주변국해군에 대한 해양견제와 북한해군에 대한 해양통제를 합리적 적용의 차원에서 수용해야 한다. 앞에서도 같은 의미의 설명을 했지만 이렇게 균형해군을 발전시킬 때 한국주변해역에서는 대양전투함대와 해역전투함대가 협동작전과 함께 한국공군과 합동작전을 실시함으로써 해양열세의 조건을 해양우세의 조건으로 조화롭게 전환시켜 주변국해군이나 또는 북한해군에 대하여 한국해군이 유리한 전투를 실시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한국해군의 균형해군임무 수용은 주변국해군이 한국해군을 볼 때에도 한국해군은 기본적으로 현존함대 즉, 해양견제를 수행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해군의 평화 지향적이며 비공격적인 해군력 운용개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 海軍力類型의 선정

 

한국해군의 함정유형이 어떠한 양상을 띠고 있느냐는 것은 한국해군이 수행해야 할 임무구조(任務構造)와 크게 관련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자주국방론(自主國防論)이 대두하면서부터 한국의 실정과 여건에 알 맞는 군사전략과 군사력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해왔으나 따지고 보면 미국군사력이 세계 최첨단 무기와 장비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육군과 공군의 전력유형(戰力類型)은 전차, 야포, 장갑차, 유도탄 및 전투기 등이 미국의 무기체계와 유사하거나 동일한 방향으로 추진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해군의 전투함정유형은 철두철미하게 한국의 실정과 여건에 부합하게 발전시킨다는 방향으로 발전시켜 왔지만 한국형 고속정(PK, PKM)과 한국형 전투함(PCC, FFK)들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선진해군력에 비하여 너무나 저 능력의 임시방편적(臨時方便的)인 해군력만을 양산하였다. 한국해군은 육군과 공군에 비하여 무기체계의 국산화와 한국화에 크게 앞장섰으나 육군과 공군의 무기체계는 선진국 수준인데 오히려 한국해군이 무기체계의 선진화와 고성능화에 성공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한국해군이 고속정과 전투함 유형을 선정하고 발전시킬 당시의 해군의사결정 분위기를 보면 누구 하나 당시 발전시키고 있는 해군력유형에 대해 이견을 제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으며 해군전략과 해군력 발전방향에 대해서도 비전을 제시하는 일이 없었다.


1. 高速艇類型의 선정

 

고속정은 소형으로서 저비용이며 고속을 낼 수 있고 어뢰(魚雷 : torpedo)와 같은 큰 파괴력을 낼 수 있기 때문에 대륙해군이 해양해군의 대형함에 대한 기습(奇襲)과 도주(逃走)(Hit and Run) 전술을 구사하는 데 유용한 무기체계로 인정되어 왔다. 이제 보다 장거리의 위력적인 유도탄이 등장함에 따라 어뢰정은 유도탄정으로 대체되기 시작했으며 유도탄고속정은 연안방어임무에 최적의 무기체계로 각광을 받고 있다. 북한해군의 수상전투함정이 주로 어뢰정과 유도탄정으로 구성된 것을 보면 북한은 대륙해군으로서 전형적인 연안방어임무를 적용하고 있다.

제인 연감에 따라 남북한 고속정유형을 비교해 보면 북한해군의 어뢰정과 유도탄정은 구소련과 중국해군의 영향을 받아 분명히 대형함을 공격하기 위해 설계되었지만 한국의 고속정은 이와는 전혀 다르게 북한의 고속정과 간첩선을 대상으로 발전되었다. 이것을 해군전략이론으로 해석하면 북한해군은 해양거부형(海洋拒否型) 고속정을 발전시켰기 때문에 한국해군은 해양통제형(海洋統制型) 고속정을 발전시켜야 당연하다. 왜냐하면 만일 한국해군이 북한해군과 같이 해양거부형 고속정을 발전시킨다면 북한에 존재하지도 않는 대형함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지 북한의 고속정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을 배경으로 한국해군의 고속정유형 수용과정을 살펴보면 엄청난 시행착오를 해온 것이 사실이다. 1970년대에는 5톤에서 수십 톤급에 이르는 FRP, PB, FB 순으로 발전되었으나 모두가 북한의 간첩선을 추적할 수 있는 속력에 크게 못 미치기 때문에 모두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에 등장한 것이 고속의 70톤급 소형고속정(PK), 140톤급 중형고속정(PKM) 그리고 미국에서 구매한 240톤급 대형유도탄고속정(PGM) 등이 등장하였으나 현 단계에서는 중형고속정(PKM)만이 운용되고 있다. 소형고속정(PK)은 너무 소형이기 때문에 내파성과 무기체계가 제약되는 단점이 있어 도태되었다. 이에 비하여 대형유도탄고속정(PGM)은 고속이며 함대함유도탄과 76mm 오토 멜라라(Oto Melara)를 장착하고 있어 한국 해군에게 반드시 필요한 유도탄고속정임에도 불구하고 도태되었다. 도태된 이유는 도입 당시만 해도 고가의 무기체계였으며 미 해군에서 표준화되지 않은 기관장비와 전자체계를 사용함으로서 고장율이 빈번했기 때문에 한국해군은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저비용의 중형고속정(PKM)을 선정하여 간첩선 침투에 대비하게 되었다. 한 국가가 해군력을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1) 해양해군(대양해군), (2) 대륙해군(연안해군), (3) 균형해군 등이 있다고 볼 때 한국해군이 해양해군과 대륙해군의 조화와 협동에 중점을 둔 균형해군을 발전시키려면 고속정유형으로는 최소한 함대함유도탄과 76mm 주포 그리고 CIWS로 무장된 고성능의 유도탄고속함(PKG)을 발전시켜 북한해군에게는 압도적 우위를 유지하고 주변국해군에게는 대양전투전대(항모전투전대나 또는 해양전투전대)와 함께 협동작전을 통하여 해군력의 양적 열세를 만회할 수 있는 위협적인 존재로 활용할 수 있어야 했으나 한국해군은 현실적 위협만을 고려하여 보다 훨씬 저비용의 중형고속정(PKM)을 선택하였다. 만일 한국해군이 해양통제, 해양견제 및 해양거부를 적용함에 있어 조화와 협동에 중점을 두는 균형해군전략에 대해 합리적 사고를 할 수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저 능력의 중형고속정(PKM)에 만족할 수 없었을 것이며 최소한 함대함유도탄(Harpoon), 76mm 주포 및 CIWS로 무장한 고성능의 유도탄고속함(PKG)을 발전시켜야 했다. 이러한 해양통제형 유도탄고속함은 전투함과의 협동작전을 용이하게 실시할 수 있기 때문에 주변국해군이 함부로 한국수역에서 도발을 할 수 없을 것이며 주변국해군이 전투함의 양적 우세만 믿고 함부로 한국주변해역에서 함대결전을 시도하지 못할 것이다. 다행히도 한국해군은 제2 연평해전을 계기로 필자가 주장해온 해양통제형 430톤급 유도탄고속함(PKG)20076월에 진수하였으며 후속해서 20여척을 생산하였다. 만일 한국해군이 대양해군과 대륙해군의 조화와 협동에 중점을 둔 균형해군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필자의 주장을 수용한다면 사실상 세계해군사상 거의 최초로 균형해군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형 균형해군의 특징은 중국과 일본에 비하여 국력의 열세 때문에 대양해군력 즉, 항모전투전대나 또는 대양전투전대의 양적 확보는 한국해군이 열세일 수 있어도 고성능의 해역해군력 즉, 고성능 유도탄고속함의 양적 확보는 국력에 관계없이 한국해역에서는 한국해군이 우세할 수 있기 때문에 한반도 주변해역에서는 한국해군이 해양우세의 조건을 조성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주변해역에서는 한국해군의 대양전투전대와 해역전투전대의 협동작전뿐만 아니라 한국공군과 해공합동작전을 실시할 수 있기 때문에 적 해군세력에 대해 해양우세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한국해군이 유도탄고속함(PKG)을 발전시킴에 있어 각별히 유의해야 할 것은 유도탄위협환경에서 작전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CIWS를 고려해야 한다. 작은 유도탄고속함이라고 대유도탄점방어체계(CIWS)를 설치해주지 않으면서 해전에 나가 싸우라는 것은 너무나 무리한 요구인 것이다.

 

2. 戰鬪艦類型의 선정

 

미국해군에서 퇴역한 함정을 재취역시켜 한국해군이 인수한 전투함유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해군에서는 구축함(驅逐艦 : Destroyer)도 소형함으로 취급하지만 편의상 구축함을 대형함으로 본다면 초기의 전투함유형은 소형(小型)PC, PCE(C)급 경비함(Patrol Ship)이 주종을 이루었으며 중형(中型)으로서 PF, APD DE급 호위함(Frigate/Escort Ship)이 있었고 보다 대형(大型)으로 1963년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섬너(Sumner)급 구축함 3척에 이어 기어링(Gearing)급 구축함 약 10척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들 인수함들은 2000년대에 들어서 모두 퇴역되고 이제 국산전투함시대를 맞이하였다.

1970년대 후반기부터 한국해군은 미국해군으로부터의 함정인수가 끝날 때를 대비해 앞으로의 한국형 전투함유형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 되었다. 당시만 해도 해군예산이 크게 제한된 상황에서 한국해군은 선진해군과 같은 구축함을 건조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정부와 국방 엘리트를 설득하기가 너무나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때 이미 선진해군에서는 5천 톤에서 9천 톤까지의 고성능 구축함을 건조하고 있었고 미국해군에서는 고저혼합(高低混合 : High Low Mix)의 원칙에 따라 고가의 구축함과 병행하여 저가의 3,500톤급 호위함(FFG)을 건조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도탄과 항공기 등의 고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이지스(Aegis)체계를 완비한 유도탄구축함과 유도탄순양함도 발전되었다. 미국해군뿐만 아니라 선진해군들은 가능한 모든 유형의 전투함에 대공 및 대함유도탄과 대유도탄점방어체계(對誘導彈點防禦體系 : Vulcan Phalanx/Goal Keeper)를 설치하고 함재헬기를 운용하는 방향이었다.

이러한 전투함의 발전추세를 당시 한국해군 엘리트들도 잘 알고 있었지만 1970년대의 한국경제는 이러한 고성능의 전투함을 건조하기에는 너무 벅찬 일이었기 때문에 한국형 전투함(FFK)을 보다 저비용에 착안하여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 및 국방 고위층의 반대를 설득시킬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최소비용으로 1,500톤급 한국형 구축함을 건조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대한민국해군이 창설된 이후 처음으로 전투함의 국산화에 착수하게 되었다. 지금도 어려운데 1970년대 말에 제10대 해군참모총장 황정연 제독(해사 3)을 비롯하여 관련된 해군 일꾼들의 해군건설에 대한 의욕은 높이 평가되어야 당연하다.

그러나 고속정을 표준화(標準化) 함에 있어 너무 저비용의 저 능력에 기준을 두었기 때문에 실패한 것과 같이 전투함을 표준화함에 있어서도 너무 저비용의 저 능력에 기준을 두었기 때문에 실패하였다. 더욱이 문제를 크게 악화시킨 것은 호위함(FFK)까지도 너무 고비용이라는 이유로 후임 해군참모총장 김종곤 제독(해사 4)은 보다 훨씬 작은 한국형 초계함(PCC)이 한국적 여건과 실정에 부합된다는 논리를 내세워 대륙해군 즉, 연안해군을 선호하는 정부 및 국방 엘리트들의 기호에 부응되게 추진함으로써 선진해군들의 대형화추세에 정반대로 전투함의 소형화를 가속화시켰다.

한국해군의 대표적 대륙해군학파인 김종곤 제독은 대간작전태세를 완비하기 위하여 모든 후방해역에 경비전대(警備戰隊)를 설치하여 고속정편대를 분산배치하고 한국형 초계함(PCC)을 대간경비전대의 기함으로 운용하려 했다. 그러나 북한의 간첩선 침투가 거의 중단되자 초계함(PCC)은 기본설계개념과는 달리 전방접적해역에 중점적으로 배치되고 있기 때문에 초계함(PCC)을 설계했던 본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운용하게된 것이다. 김종곤 제독의 해군전략개념은 대간작전을 위해 초계함(PCC), 고속정(PKM), 전탐기지(지휘소) 및 고속정기지로 구성되는 경비전대를 운용하고 전방작전을 위해 기존의 구축함과 한국형 호위함 등으로 구성되는 전투전대를 운용한다는 것이었으나 미국해군으로부터 인수한 전투함이 완전히 퇴역되고 대간작전소요가 적어짐에 따라 저 능력의 초계함(PCC)이 고 위협환경의 전방해역작전에서 주역할 즉, 전투전대 역할을 하는 세력이 되었다.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한국해군은 북한의 간첩선 침투에 시달려 왔기 때문에 후방해역에서는 완벽한 연안방어중심의 해양거부에 임하고 전방해역에서는 해양통제중심의 국지통제(Local Engagement)를 각각 독립적으로 실시하려는 계획이었다. 만일에 당시의 해군 엘리트들이 후방해역의 연안방어와 전방해역의 해양통제(국지통제)를 독립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조화와 협동의 차원에서 현제와 미래를 같이 고려하는 균형해군전략으로 수용했다면 아마도 한국해군은 지금보다 훨씬 다른 모습을 갖추게 되었을 것이다. 만일 한국해군이 후방해역의 연안방어와 전방해역의 해양통제에 다 같이 사용할 수 있는 전투함과 고속정의 협동작전(協同作戰)을 고려하면서 고 위협환경이 예상되는 미래전 뿐만 아니라 통일한국 해군의 역할 즉, 외해에서의 해양견제와 내해에서의 해양통제를 위한 균형해군전략(均衡海軍戰略)을 선택했다면 저 능력의 고속정(PK, PKM)과 저비용의 전투함(PCC, FFK)에만 집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미국해군으로부터 인수한 구축함은 헬기와 유도탄을 탑재할 수 있도록 국내에서 개조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형 전투함은 헬기를 탑재할 수 없는 호위함(FFK)에서 헬기를 탑재할 수 있는 유도탄구축함(DDG)으로 발전되지 못하고 호위함(FFK)보다 더 작은 초계함(PCC)으로 소형화 시켰다. 물론 고성능 구축함은 고비용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나 비용이 훨씬 덜 드는 고속정까지도 저 능력의 중형고속정(PKM)으로 표준화시킨 것을 보면 반드시 비용의 문제만 아니고 해군전략에 대한 사고가 미흡하고 저차원이었으며 너무나 현실에만 집착했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한국해군 엘리트가 대륙해군의 연안방어에만 집착하지 않고 대륙해군과 대양해군의 조화와 균형에 중점을 둔 균형해군에 일찍이 눈을 떴다면 당연히 유도탄고속함(PKG)과 유도탄구축함(DDG)을 선택했어야 했으며 과도한 기대라고 하겠지만 아마도 지금쯤은 핵추진항모(CVN)나 또는 핵추진잠수함(SSN) 중 하나를 건조하거나 또는 진수하고 있을 것이다.

유도탄, 항공기 및 잠수함 등의 고 위협환경에서 현대 전투함은 대공유도탄, 대유도탄점방어체계 및 함재헬기 등이 없이는 생존성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비록 이러한 무기체계들이 고비용을 필요로 한다 해도 우선 함체(艦體)라도 충분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건조했다면 적절한 시기에 개조할 수 있기 때문에 여유 있게 생각했어야 했다. 큰 배를 만들려하면 정부 및 국방 엘리트들이 반대하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으나 자진해서 전투함의 보다 작은 소형화를 추진한 것은 분명히 정부와 국방 엘리트들을 과도히 의식한 한국해군의 대륙해군주의자들 때문이었다.

한국해군이 전투함정유형을 선택한 것을 보면 고속정을 소형(PK), 중형(PKM) 및 대형(PGM)으로 발전시킨 것과 같이 전투함도 소형(PCC), 중형(FFK) 및 대형(DDH : 인수구축함)으로 구분해 발전시켰다. 그리고 최근에는 구축함까지도 소형(KDX-), 중형(KDX-) 및 대형(KDX-)으로 구분해 발전시키고 있다. 이러한 3개 유형의 구분은 놀랍게도 조선시대 맹선체제(猛船體制)와 꼭 같은 구분이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한국해군이 전투함정유형을 대, , 소로 구분한 것과 같이, 조선해군도 대맹선(大猛船 : 80), 중맹선(60) 및 소맹선(30)으로 구분하였다. 그러던 것이 삼포왜변(三浦倭變)을 당해 맹선들이 선체가 크고 속력이 느려서 작고 속력이 빠른 왜선을 추격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들을 조선(漕船)으로 활용하는 한편 6-10명이 승선하는 경쾌선(輕快船)을 건조하여 왜구(倭寇)에 대비하였다.

조선의 전투함이 경쾌선으로 변화됨에 따라 왜선(倭船)은 선체를 보다 크고 높게 만들어 많은 인원을 승선시키고 다양한 무기를 사용토록 하여 공격력이 크게 강화되었다. 따라서 조선의 경쾌선은 소형화되어 총통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상대가 되지 못하는 입장이 되었다. 이러한 점을 지적하면서 서후(徐厚)는 고대선(高大船)의 필요성을 논리적으로 주장하였으나 채택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사량왜변(蛇梁倭變)을 겪으면서 왜인이나 중국인이 오히려 대선(大船)을 가지고 내침하는 것을 보고서야 군선개량론(軍船改良論)이 다시 제기되었다. 중종(中宗) 39년에 판중추부사 송흠(宋欽)의 상소로 인하여 판옥선(板屋船)이 수용되어 조선의 대표적 전투함이 되었으며 조선해군은 소형전선제에서 대형전선제로 해군혁신을 단행하였다.

장학근 박사가 조선시대 해양방위사를 통하여 대맹선(大猛船)의 승조인원이 80명인데 비하여 판옥선(板屋船)의 경우는 최소한 164명이고 임진왜란 때 사격군이 125명이었으므로 판옥선은 맹선에 비해 현저한 발전을 한 것이라고 지적한 점을 고려할 때 조선해군이 만일 이때에 판옥선으로의 과감한 전환을 하지 않았다면 이순신이 아무리 명 제독(名 提督)이라 할지라도 임진왜란에서 그렇게 혁혁한 전공을 세우지는 못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순신 제독은 판옥선의 우수성에 대하여 왜군이 해전에 패한 것은 그들이 해전에 능숙하지 못한 것이 아니고 전선이 장대하지 못하여 대포(大砲)를 장치할 수 없었으므로 패했다고 평가한 것을 보아도 나라의 주 전투함세력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해군의 전투함정유형 선정을 검토하면서 조선시대 전선유형(戰船類型)에 대한 사례를 검토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만일 조선해군이 맹선체제(猛船體制)를 그대로 유지했거나 또는 경쾌선체제(輕快船體制)를 유지했다면 임진왜란에서 이순신함대도 참패를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대선(大船)인 판옥선체제(板屋船體制)를 선택했기 때문에 이순신 제독이 수많은 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물론 한국해군과 조선해군은 시대적 상황이 다르지만 한국의 과거 정부, 국방 및 해군 엘리트는 조선시대의 소형군선체제(小型軍船體制)와 같이 너무 소형전투함정체제(小型戰鬪艦艇體制)에 집착했었다. 왜냐하면 한국해군의 대표적인 고속정(PKM)은 북한뿐만 아니라 주변국인 중()()러 해군의 고속정에 비하여 우수한 점이 별로 없으며 대표적인 전투함(PCC)도 주변국 해군에 비하여 보잘 것 없는 저 능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해군은 하루 빨리 새로운 고성능의 해역전투함대(LBF : Littoral Battle Force)를 발전시기 위하여 유도탄고속함(LCB/PKG : Littoral Combat Boat)과 해역전투함(유도탄호위함)(LCS/FFG : Littoral Combat Ship)을 새롭게 발전시켜야 하며 이와 함께 대양전투함대(OBF : Ocean Battle Force) 를 구성하기 위하여 유도탄구축함(DDG), 유도탄호위함(FFG), 최소핵추진잠수함(Minimum SSN) 및 최소핵추진항모(Minimum CVN)를 진수시켜야 한다. 한국해군이 진수시킨 대형 상륙함(LPX)은 잠정적으로 대양전투전대의 주력함으로 운용하고 궁극적으로 최소핵추진항모(CVN)와 교체하여 상륙준비전대(Amphibious Ready Group/ARG)로 전용되어야 한다. 한국해군은 최소핵추진항모(Minimum CVN)와 최소핵추진잠수함(Minimum SSN)을 확보하기 위하여 국가 및 국방지휘당국을 설득하고 해군외교를 강화하는 한편, 민간조선소에게 핵추진에 중점을 두고 설계용역을 의뢰해야 하며 민간조선소가 프랑스를 포함하여 선진국 조선소들과 기술협력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끝마치며

 

해방병단(海防兵團)이 모체가 된 한국해군은 창립되자마자 북한의 침략을 받고 어려움을 겪었으며 한국전쟁 이후에는 남북간 군사적 대치로 긴장이 고조되어 왔다. 21세기에 들어서 6.15남북공동선언으로 상호협력의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으나 북한은 언제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공산주의체제와 선군정치체제(先軍政治體制)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해군은 대북 경계심을 갖고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 앞으로 통일한국시대에 대비하여 한국해군은 적절한 전략사상을 수용하고, 적절한 해군임무를 적용하며 해군력유형을 선정하여 새로운 해군력을 발전시켜야 할 시점에 와있다.

한국해군은 통일에 이르는 과정에서 북한의 해군위협을 통제하고 주변국의 해양위협을 견제 할 수 있도록 해양해군전략사상과 대륙해군전략사상의 조화와 협동에 중점을 둔 균형해군전략사상(均衡海軍戰略思想)을 수용해야 한다.

이러한 균형해군전략사상에 기본을 두고 전시 한국해군임무는 바다에서의 전쟁으로 주변국에 대한 해양견제와 북한에 대한 해양통제에 중점을 두고, 바다로부터의 전쟁으로 주변국과 북한에 대한 제한된 해양강습(海洋强襲/戰力投射 : Sea Strike/Power Projection)에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평시 한국해군임무는 억제(Deterrence)와 전방시위(Forward Presence) 그리고 전쟁이외의 해군작전(Naval Operations Other Than War)에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한국해군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한국의 해군력유형으로 대양전투함대(OBF/CBF : Ocean Battle Force/Carrier Battle Force)는 최소핵추진항모(Minimum CVN), 유도탄구축함(DDG), 유도탄호위함(FFG)및 최소핵추진잠수함(Minimum SSN)으로, 해역전투함대(LBF : Littoral Battle Force)는 유도탄호위함(LCS/FFG)과 유도탄고속함(LCB/PKG)으로 선정되어야 한다.

해군력소요는 이와 같은 대표적 함대유형소요에 따라 먼저 기본적 임무수행소요로서 3개 대양전투함대와 15개 연안전투전대(동서남해에 각각 5개 연안전투전대)를 발전시키고 차후에 상대적 전력소요를 검토해 발전시켜야할 것이다.

한국 해군은 통일신라시대 장보고 제독의 해양사상, 고려시대 정지 제독의 해군전략 그리고 조선시대 이순신 제독의 해군전략과 해군작전술을 전수받아 전시에 해양견제와 해양통제 그리고 제한된 전력투사를 실시할 수 있는 균형해군전략을 발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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